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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주 좋은시 수저의 일 정현우

妙有 李應鎬 2019. 12. 2. 16:06
12월 2주 좋은시 수저의 일 정현우

수저의 일

 

 정현우

 

밥알을 넘기다 수저를 삼켰습니다.

우리는 수저 없이 밥을 떠먹습니다.

 

손이 없어도 나는

수목의 가장 슬픈 잎을 흔들 수 있고

밥상에 달그락거리던 저녁을 훔칠 수 있고

 

모든 고백이 떠밀려오는 오후는

수저의 일.

아무 일 없이 마주 앉아

뭇국을 떠먹는 일.

 

얼굴을 수저에 얹어보는 일.

혼자 앉은 식탁에

나란히 수저를 올려보는 일,

 

당신의 왼쪽 무덤에

심장을 비스듬히 대어 보는 일.

 

밥을 먹는다는 건,

고개를 숙이고

주검을 퍼먹는 일,

당연한 것들을

오래도록 잊는 일.

 

왼쪽과 오른쪽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나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수저는 겨울을 퍼다 나를 것이고

 

창가에 날리는 쌀알을

꼭꼭 씹어 먹고 싶었습니다.

 

 

 

           ⸺계간 시산맥2019년 겨울호

               제4회 동주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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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 1986년 경기도 송탄 출생. 평택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 2015조선일보신춘문예로 시 등단. 라임 1』 『시인의 악기상점 1. KBS 등 구성작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