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주 좋은시 나뭇잎 흔들릴 때 피어나는 빛으로 손택수 멀리 여행을 갈 처지는 못 되고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을 때 나무 그늘 흔들리는 걸 보겠네 병가라도 내고 싶지만 아플 틈이 어딨나 서둘러 약국을 찾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병을 앓는 것도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 오다가다 안면을 트고 지낸 은목서라도 있어 그 그늘이 어떻게 흔들리는가를 보겠네 마흔 몇 해 동안 나무 그늘 흔들리는 데 마음 준 적이 없다는 건 누군가의 눈망울을 들여다 본 적이 없다는 얘기처럼 쓸쓸한 이야기 어떤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다 지워졌는데 그 눈빛만은 기억나지 눈빛 하나로 한 생을 함께 하다 가지 나뭇잎 흔들릴 때마다 살아나는 빛이 그 눈빛만 같을 때 어디 먼 섬이라도 찾듯, 나는 지금 병가를 내고 있는 거라 여가 같은 병가를 쓰고 있는 거라 나무 그늘 이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 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 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계간 《문예연구》 2019년 봄호 ------------ 손택수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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