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주 좋은시 새 1 / 천상병
4월 1주 좋은시
새 1 / 천상병
저것 앞에서는
눈이란 다만 무력할 따름.
가을 하늘가에 길게 뻗친 가지 끝에,
점찍힌 저 절대정지(絶對靜止)를
보겠다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미묘하기 그지 없는 간격(間隔)을,
이어주는 다리[橋]는 무슨
상형(象形)인가.
저것은
무너진 시계(視界) 위에 슬며시 깃을
펴고
피빛깔의 햇살을
쪼으며
불현듯이 왔다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은 소리없이 이는데
이 하늘, 저 하늘의
순수균형(純粹均衡)을
그토록 간신히 지탱하는 새
한마리.
새 2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靈魂)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情感)에 그득찬 계절(季節)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새 3 / 천상병
최신형기관총좌(最新型機關銃座)를 지키던 젊은 병사(兵士)는
피비린내 나는 맹수(猛獸)의 이빨 같은 총구(銃口) 옆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병사는 그의 머리 위에 날아온
한 마리 새를 다정하게 쳐다보았다. 산골 출신인 그는 새에게
온갖 아름다운 관심(關心)을 쏟았다. 그 관심(關心)은 그의
눈을 충혈(充血)케 했다. 그의 손은 서서히 움직여 최신형기관총구
(最新型機關銃口)를 새에게 겨냥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새는
하늘에서 떨어졌다. 수풀 속에 떨어진 새의 시체(屍體)는 그냥
싸늘하게 굳어졌을까. 온 수풀은 성(聖)바오로의 손바닥인 양
새의 시체(屍體)를 어루만졌고 모든 나무와 풀과 꽃들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 부르짖었다. 죄(罪)없는 자(者)의 피는 씻을 수
없다. 죄(罪)없는 자(者)의 피는 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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