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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대구 두 마리와 7억원-(2543번째)

妙有 李應鎬 2011. 1. 13. 10:28

생대구 두 마리와 7억원-(2543번째)






 

[시론]

생대구 두 마리와 7억원

구설 오르자 사직 요청한 대사헌
감사원장 자리는 도덕성이 핵심


입력: 2011-01-09 17:30 / 수정: 2011-01-10 03:44


"지금 신이 받았다는 물건이 비록 심히 작지만 그마저 터무니없는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신이 생각하건대 풍헌(風憲)은 남들이 다 주목하고 있는 자리라서 비록 누가 지나가는 말로 은근하게 비꼬더라도 직위에서 물러나게 한 다음 사실관계가 밝혀지길 기다려야 할 것이니 신이 사직하게 하옵소서." 이는 세종 14년에 대사헌이던 신개(申槪)가 강원도 고성 사람 최치로부터 생대구 두 마리를 받았다고 진정을 받자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면서 왕에게 사직을 구한 상소문 중의 일부다.


지금처럼 냉장 시설도 없던 시절에 생대구 두 마리를 뇌물로 주었다는 사실도 우습지만,이런 터무니없는 일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국가 기강 확립을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그의 말에서 공직자의 처신이 어떠해야 함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대사헌은 대사간과 함께 백관의 비위에 대한 감찰과 정책의 타당성 여부 등에 관한 직언을 담당하던 기관의 수장으로서 지금의 감사원장이나 검찰총장에 해당되는 직위였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적격성을 둘러싼 정부 여당과 야당,그리고 여당 안에서의 이론이 분분하다.


그런데 우리가 따져 봐야 할 일이 있다. 26년가량 다닌 직장에서 은퇴했는데 그때 나이가 54세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더구나 그 직업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 직종이라면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것이고,이는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검사 생활 26년을 마치고 법무법인에 근무할 수밖에 없었는데,그때 받은 몇 개월 간의 급여 약 7억원을 두고 감사원장 후보 자격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시중 여론에 정 후보 자신은 물론 정부 여당에선 억울해 할 만하다. 그러나 적법하게 받은 보수이고 세금도 제대로 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강변이 그리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 건 필자에게만 해당된 것은 아닌 듯 싶다.


그 이유는 정 후보자의 자리가 감사원장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합법성만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다. 감사원법은 감사 결과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실이 있다면 감사원은 해당 기관장에게 일정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또 이에 따라 행정운영의 공정성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정 사항을 권고하거나 통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법성을 따지는 것은 물론 업무의 정당성까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해 행정부의 자기시정 기능까지 담당토록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감사원은 사회의 공정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하는 기관이다. 공정은 정의와도 다르다. 등분(等分)이 사회주의적 관점의 배분이라면,정의는 능력에 따른 균분(均分)으로 족하다. 그러나 공정은 안분(按分)이다. 안분은 가진 자의 자기결단이다. 남들에게는 도덕적 차원의 선택 문제를,자신에게는 법적 차원의 의무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정 후보자는 전관예우 덕택에 보통 사람들은 10년 이상 일해도 손에 쥐기 힘든 거액을 벌었다. 그런 그가 공정을 담보하는 기관의 수장에 임명될 경우 과연 행정부의 각 기관에 대해 엄정한 기강확립을 역설할 때 얼마나 내부적 설득력과 대외적 공감을 얻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감사원장은 권력의 핵심이면서 더없이 명예로운 헌법적 기관이다. 다른 기관과는 무게가 다른 자리다. 돈,권력,명예 역시 한정된 사회적 자원이기에 가능한 한 고르게 돌아가는 것 역시 공정이다. 그리고 그건 누가 뭐라 하기 전에 그 중 한두 개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의 자기결단 문제다.


이번 청문회(聽聞會)에서 청문(淸聞)을 들을 수 있을까. 올곧았던 조상들처럼 말이다.


이호선 < 국민대 교수·법학 >


♬배경음악:Eternal L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