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이란 무엇입니까?
여래 10대발원문이나 사홍서원 처럼 나와 남이 함께 이익을
보고 마음을 깨달아 훌륭한 인격자가 되므로서 살기 좋은
국토를 만들겠다고 뜻을 세우는 것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
① 중생이 가이 없더라도 맹세코 다 건지기를 원합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② 번뇌가 다함이 없더라도 맹세코 다 끊기를 원합니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③ 법문이 한량이 없더라도 맹세코 다 배우기를 원합니다
(법문무량서원학(法問無量誓願學)
④ 불도가 위 없더라도 맹세코 다 이루기를 원합니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사홍서원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겸비한 네 가지 큰
맹세와 불자로서 꼭 하고자 하는바 원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중생이 바라는 바이며, 온 중생에게 차별 없이
이익을 안겨주고 온 중생이 성불을 위해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중생이란 축생을 포함한 의혹과 번뇌에 가득 찬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 것인지 또 어디로 갈 것인
지를 모르고 순간 순간을 자기 탐욕의 만족과 불만 속에서
울고 웃으며 열리고 닫히는 생사(生死)를 따라 파도 위에 뜬
나무 조각처럼 육도(六道)를 끝없이 방황하고 있을 따름입
니다.
그들은 행복과 영원으로 가는 길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 하루의 편한 날도 없이 이 걱정 저 걱정
에 하루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그렇듯이 우리 자신 어느 누가 더 이
상 이런 고통과 번뇌의 그물을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느 의미에서든지 이런 고해를 여의고 열반의 화원(花園)
으로 가야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런 육도의 고해를 떠나야만 되고 또 떠나
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이란 자리(自利)적인 서원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모든 번뇌를 다 끊고 열반
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번뇌의 연속체인 중생으로써는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란 어렵습니다.
그것은 모든 번뇌를 끊은 자, 열반을 증득한 자, 그리하여 복
과 지혜를 구족하고 자비심을 일으킨 자만이 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하나도 빠짐없이
열반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생각이나 이해만으로는 실제 열반
의 언덕에 이를 수 없습니다.
끊임없고 철저한 수행이 따라야만 하며, 정말로 번뇌를 다 끊
고 열반에 이르고자 하면 피나는 정진의 법문무량서원학(法
問無量誓願學)이란 결의를 다져야 합니다.
그러나,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열반에 이른다하여도 아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즉 그것은 나 혼자만이 그렇게 하면 되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중생의 은혜 속에서 갖가지
인연으로 얽혀 살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외면한다면 번뇌를 끊었다 하더라도 성불은 아
직도 먼 것이며 반대로 각자가 모두 <중생을 제도하리라>할
때 우리 모두 성불의 길은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라 하겠습
니다.
그러니 우리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대전제를
내세우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으로는 번뇌를 다 끊고 법문을 다 배우며 밖으로
는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여 나감으로써 불도를 꼭 성취하여
야 할지니 우리는 끝으로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
란 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사홍서원은 현재 공식적인 불교의식에서 주로 법회가 끝날
때 한결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서원들이 있는데 이를 분류해보면 공통
의 원과 각자의 특수한 원이 있습니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은 공통의 원이면서 총괄적인 서원이라는
의미에서 총원(總願)이라고도 합니다.
일체의 보살이 처음 발심할 때에 반드시 이 원을 발합니다.
이 소원은 넓고 크므로 홍원(弘願)이라 하고 그 마음을 자제하
므로 서(誓)라 하며 뜻의 만족을 구하므로 원이라 합니다.
- 기초교리문답 -
여기는 불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