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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주 좋은시 홍신선 가족

妙有 李應鎬 2019. 11. 4. 17:04
11월 2주 좋은시 홍신선 가족

11월 2주 좋은시



가족

홍신선




이른 봄날 오후 보통리 저수지에 가서 보았다.

떡밥, 빈 라면컵, 찌그러진 콜라 깡통,
플라스틱 막걸리병, 그리고 겨우내
물 속에서 허리 이하가 녹은 낡은 갈대
새하얗디 새하얀 햇살에 눈 못 뜨고 섰는 멍한 갈대 하
나를.

아니다. 전세집처럼 4평방킬로미터의 희부연 하늘을 맞
들고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 속으로 나는 쇠오리 한 가족을,
큰 놈 궁둥이께 고개 숙여 잇대인 작은놈의 궁둥이,
미등처럼 깜박이는, 털을 기운 궁둥이를
보았다.

하릴없이 떨어져 남은 빈 수면에는
손들 내린, 목이 쉰 물결들이
삼삼오오 한가롭게 흩어져가고
그들 사이
목공소 주인 노릇하는 아우도
흩어져가고

두엄 걷은 마늘밭 마늘잎들
한가롭게 흔들리는 마늘밭의 허공에서
나는 문득 보았다
밑그림처럼 흐린
반쯤 고개 쳐든 수건 쓴 어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