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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여, 보자기라도 쓰자 윤준경

妙有 李應鎬 2019. 9. 30. 12:09
10월 1주 좋은시 시인들이여, 보자기라도 쓰자

10월 1주 좋은시


시인들이여, 보자기라도 쓰자

윤준경

 

 

시인들이여 시를 읽을 때는

머리에 보자기라도 쓰자

빈손으로 나와 목소리 하나로 시를 읽는 것은

참 시시하다

 

시시한 시를 더욱 시시하게

지루한 시간을 더욱 지루하게

사람들을 시에서 떠나가게

시가 시로부터 버림받게 한다

 

한번도 맨손으로 시를 읽지 않는

그는 빈센트 반 고흐의 긴 시를 외우기도 하고

사진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 관객 앞에 내놓는다

 

황진이를 읽을 때는

벽계수가 되고

김삿갓을 읽을 때는

이쁜 주모와 희롱을 하고

백남준을 읽을 때는

멀쩡한 넥타이를 자르는가하면

남자와 여자를 벌거벗겨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시인들이여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고만 있을 것인가

보자기라도 쓰자

숯검뎅이로 눈썹이라도 칠하자

시가 이 지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시가 우리에게 침 뱉기 전에

* 그는 이생진 시인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