湖巖 이병철 <1910 ~ 1987
>
호암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다시 부엌과 부엌방, 방 2개,
대청으로,
사랑채는 방 2개와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솟을대문 양쪽으로 방 2개가 배치되어
있다.
배후 전경.
대문채
사랑채 내부.
사랑채
생가 입구 < 월요일은
휴관 >
호암 생가는
삼성 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이끈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의 태어난
집이다.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단다.
대 문 채
1851년 이병철 선생의 조부께서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 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사 랑 채
안 채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이 물이 빨리 흘러들어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생가를 복원할 때
본채가 지어진 연대를 남기기 위해
대들보의 상량문을 옮겨
놓았다 한다.
< 辛亥年(1851년) 癸巳月辛卯日乙未時立柱上樑>
장 독
대
사 랑
채
바위의 모양이 마치 벼가마를 쌓아 놓은 것
같아 재물이 모이는 명당이 되기도
했단다.
바위가 마치 돈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 같이 보여
관광객들은 한 번식
안아보며
재물복이 쏟아지기를
기원<?> 한단다.
호암 선생 조부는 3형제였고 좌우에
둘째, 세째 조부의 집도
있다.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이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자의 기를 받아 보기
위해
방문객이 줄을 잇고
있단다.
부를 이룬 집안의 명당
터를 한 번 둘러보며
기분 전환하고 힘을
내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 * * * * *
*
追
記
의령에 갈 기회가
생기면
읍내 재래시장을 찾아 이 곳의 명물
망개떡을 사
먹어보고
의령 소고기 국밥을 먹어 보기를 권해
봅니다.
5일장이 서는
날(3일,
8일)
찾아 가면 TV에도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재래시장 소고기국밥을 먹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병철 생가를 찾아 기를 받아 보고
귀로에 주남저수지를 둘러 철새를 구경하고 돌아오면
하루를 즐겁고 뜻있게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