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래 가끔 얼어붙은 빙판이 있어서 조심 조심... 2009년 송년산행도 산성길이었었는데, 올해도 이곳으로 정해졌다.며칠 이어진 추위는 물러가고, 날씨가 따뜻해서 산을 오르며 옷을 하나씩 벗어야 했다 <2010.12.18.>
서문으로 들어가는 산객들의 행렬이 복잡하다. 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이리 많은 우리 나라 좋은 나라다.
높은 곳에서 서문을 바라보는 이 구도는 여기 올 때마다 한장씩 찍는 단골 촬영장소다.
며칠전에 드라마 "근초고왕"을 보는데 바로 이곳의 장면이 나오던데...
지난달에 복원이 끝난 "남한 행궁"을 오늘은 사전 예약을 하고 문화재 해설사와 함께 1시간동안 돌아 보았다, 행궁의 정문인 "漢南樓"의 모습...아직 단청이 올려지지 않은 모습이다
앞쪽의 석주 4개는 원래 그대로이고 뒤의 4개는 다시 만들어서 색갈이 다른데, 원래의 석주도 2개는 인근 초등학교 교문으로 쓰이던 것을 회수해 왔고, 2개는 마을에서 아무렇게나 쓰이던 것을 되찾아 온 것이다
한남루 현판의 남녘 남자가 특이하다,南字를 틀리게 쓴게 아니냐고 하시면 공부를 제대로 안 한 사람이라고 해설사는 말한다.
산성이 의병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에 일제 때 행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다행히도 1897년에 외국인에 찍은 완벽한 한남루 사진이 남아 있어서 복원에도 도움이 되었고,그 사진의 현판 글자가 바로 위와 같았다, 한자의 여러 서체중 하나라고 한다
한남루를 지나 궁안으로 들어서면, 4각형의 마르지 않는 못이 있고. 저 계단을 통하여 궁으로 들어간다
좌우에 긴 행랑이 있는데... 줄행랑을 친다는 말의 어원이 이 긴 행랑채에서 연유한다고...
오르는 계단도 길도 3갈래이고 문도 3개이다, 가운데는 임금이 통행하는 문이고 길이다
단청을 올리지 않은 행궁의 잡상들... "어처구니"라고도 한다
한남루의 뒷모습...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국상때 상복입은 궁인들 모습이 연상 된다
남한행궁에 들른 조선 임금은 6분이였다고 한다, 왜란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힘을 기르고 방비하기 보다는 명분과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호란이 나자 결국은 백성들을 사지로 내 몰고, 임금이 항복의 치욕을 겪게 했다,
상궐이 먼저 복원되고, 하궐터를 발굴조사하는 장면의 사진, 이번에 복원이 끝난 것이 바로 이 하궐이다
사진 위의 내행전은 임금의 침전이자 처소이다
내행전 바로 뒤에 있는 재덕당은 임금의 수신공간이다
전국의 여러 행궁중에 종묘와 사직까지 갖춘 곳은 남한 행궁뿐이다
복잡하고 많은 건물들을 다 소개 할 수는 없고... 아직 단청을 올리지 않은 행궁 복원은 사실 완료 된 것이 아니지만, 관람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2011년 2월 말까지 사전 예약제로 제한 공개를 하고 있다, 3월부터는 단청 공사 재개로 관람이 중지 된다고 한다
어느 유적지가 그렇지 않으랴마는,산성에 오면 가는 곳마다 옛 이야기와 아픈 기억과 역사가 서려 있다,
여기 오면 누구나 국가안보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300년전에, 임금을 모시고 황망히 이곳으로 피란을 와서도 우리 선조님들은 끊임없이 논쟁으로 낮과 밤을 지새웠다지요, 이 시대에도 어째서 그 옛날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