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삼국지
2년 전에
위나라 시조인 조조의 묘가
확인되었다는 발표는 중국대륙을 들썩였다.
지방 정부들은
관광 상품을 위해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묘를 발굴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삼국지>는
대체로 나관중 소설 <삼국지연의>를 갖고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색으로
다양한 <삼국지>를 만들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이문열의 <삼국지>를 수작으로 꼽는 것은
특유의 유려함과
무게감 있는 문체 그리고
작가의 비평이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위, 촉, 오 세 나라의 격한 대립과
진의 통일 과정에서
전승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의리와
조조와의 대결,
그리고 제갈량의 기지 등으로 엮는 작품이다.
삼국지 한 권으로 얘기 못할 게 없다.
혁명, 전쟁에서부터
역사, 철학, 과학 아니 인생의 모든 지혜가
담긴 삼국지는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크다.
<삼국지>엔 3대 전쟁이 있다.
유비, 손권 연합군과 조조와의 혈투였던
‘적벽대전’,
손권과 유비와의 전투였던
‘이릉대전’,
그리고 삼국시대 흐름을 바꾸었던
조조와 원소군의 전투인
‘관도대전’이다.
하지만 모든 승패는
외적인 병력이 아니라 전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관도대전’에서 조조는
1만 여군과 원소의 10만 대군을
기습격파로 승리했다.
마오쩌둥이 밥은 안 먹어도
열 번은 읽었다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100만 대 10만이라는 병력에서
유비의 능력을 인지하고
강력한 경쟁자 조조 군을 파악한 후
또 다른 경쟁자 손권을 설득해서
자기편으로 만든다.
때론 원수까지 내편으로
만드는 전술이
난관 속의 현실을 유리하게 만든 1등 공신이 된다.
인생은 전쟁터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의 전략은
기본에 집중하는 일이다.
그 기본이란 마음을 얻는 일이다.
왜 요즘 들어 1,800년 전
제갈량을 최고의 전략가로 꼽을까.
그는 상대의 마음을 공격하는 공심술을
상책 중의 상책으로 꼽았다.
제갈량이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아 일곱 번 풀어 준
‘칠종칠금’일화는
그가 선보인 공심술의 걸작이다
그에게 일곱 번이란
마음에서 우러난 승복을 통해
남만을 평정하면서
현재의 수고로 영원한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고도의 전략이었다.
칠종칠금이란
당장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얻고자 할 때 줄줄 알고
펼치고자 할 때 억누를 줄 아는 지혜다.
비경제적 전술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현대사회에선
먼저 마음을 얻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마음을 얻는 일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관건이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겐 말이나 행동을
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겉으론 거의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관우와
장비는 호불호가 너무 명확했다.
물론 그들도
의리나 자기 소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능력이 부족해도 예의를 갖추었지만,
자기 밖에 모르는
소인배들에겐 가차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관우 성격 때문에
형주수비 때
사인에게 심하게 호통을 치면서 벌을 주자
그는 손권에게 항복해 버렸다.
그 결과 전세가 불리해졌고
그가 죽자
이릉대전이 일어나 참패하여
촉의 국력이 초기화되는 어마어마한
상황까지 갔던 것이다.
인간만사가 그렇다.
내가 만만하게 판단하고 상대를
무시하면
뜻하지 않게 생각보다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때론
원칙만을 고집하며
적을 많이 만드는 일보다
적절한 원칙을 통해 호감을 살 줄 아는
겸손한 미덕이 더 낫다.
인간사회에서
‘적을 만들지 말자.’는 교훈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 덕목인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절감하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적을
안 만드는 이 능력이
오래가게 하고 만사를 형통케 한다.
반면에 관우처럼
능력이 많아 승진도 잘 하지만,
잘난 자존감이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떨어져
적이 많아지면
한 순간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이렇듯
인생의 전투에서 최고의 전략이란
마음 얻는 일이지만,
조조가 말했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는
왜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하는지 이유가 나온다.
아이러니 한 일은
조조는 이 말에 나온
‘제가’를 위해 병든 아버지를 자기 성으로
데려오다가 병사에게 죽게 된다.
물론 당시 유교에서 강조하는
올바른 선비의 길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였지만
21C에서 조조의 말은
인생의 기본이 되고 있다.
마음을 바르게 닦아야만
몸이 설 수 있고
몸이 서야 집안이 바르게 설 수 있고
집안이 서야만
나라든 회사든 바르게
다스려 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지도자로부터 서민까지
모두가 먼저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만
세상이 태평하다는 것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마음과 몸을 닦으면
나이차이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유비와 제갈량은 20살 차이였다.
진정 마음을 닦았다면
유비처럼 조카뻘 되는 사람들과
예의바르게 대하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마음과 몸을 닦으면
성격차이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젊을 때 나는 유비가
무척 답답하게만 느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요
어마어마한 자산임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조조는 전형적인 인정머리 없는
상사타입이나 사실
이런 사람에게 배울 점도 많다.
제갈량은
천재이며 좋은 짝꿍이지만
이런 사람은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그와 부족한 내 이웃은 무지 많다.
나는 차라리 그들과
동거 동락하길 원하는 것은
작은 자를 통한
은혜가 더 존귀함을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마음과 몸을 닦으면
인생 야망이 문제가 되질 않는다.
돗자리나 팔던 유비가
장비와 관우와 결의를 맺고 한 대국의
황제까지 이룸은 야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인생에서 야망은
미래의 희망과 꿈이요 장기적 목표인 동시에
에고의 마지막 단계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역사에 남길 것을 생각해 본다.
그럴수록 7개문을 통해
에고(Ego)라는 환상은 더 강화된다.
하지만 이 에고는 환상에
불과하기에
올바르게 자아를 이해했다면
에고와 작별을 고한다.
그러면 무(無)가 드러난다.
<위대한 개츠비>는
인생의 모든 야망을
한 여자를 위해 쏟아낸 남자 이야기다.
인생의 질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야망을
어떤 목적을 갖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그 목적이 야망과 비전의 차이를 만든다.
야망은 스스로 꿈꾸는 것이나
비전은 사명으로부터
온 꿈이다.
야망은
인생의 주파수를 세상에 맞추지만,
비전은
오로지 하늘에 맞춘다.
야망은
자신의 왕국이 생의 종착지이만,
비전은
하늘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이웃이 바로미터다.
그래서
야망은 시세를 분별하지만
비전은 시대를 분별할 줄 안다.
그래서
야망은 죽음이 모든 것의 준거가 되지만
비전은 죽음보다는
그와 이웃의 관계를 가장 신경 쓰면서
죽음을 대비한다.
이렇듯
<삼국지>는 인생에서
야망의 한계를 가르쳐 주었다.
야망보다는
비전을 갖고 사는 것이
내일을 대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것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