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이미지

하느님 숭배와 평등·박애 가르친 마지막 예언자 /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妙有 李應鎬 2017. 9. 30. 20:04







하느님 숭배와 평등·박애 가르친 마지막 예언자 /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

40세때 기도 중 계시 받아…유일신·윤리적 삶 설파
혈연 대신 믿음에 충성 강조…아랍을 종교로 통합
유대인·그리스도인 신앙 허용…종교적 박해는 안해


무함마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이다. ‘이슬람’(Islam)이라는 말은 ‘복종’(submission)이라는 뜻이고, ‘무슬림’은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공동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신에게 제사로 드리라고 했을 때 무조건 복종한 것처럼 알라에게 복종하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는다는 뜻이 들어 있다.

세계 큰 종교들 중 가장 늦게 생겨났지만, 이슬람교는 현재 약 13억 신도를 가진 종교로서 세계 인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수적으로 그리스도교 다음으로 큰 종교일 뿐 아니라 세계 큰 종교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이기도 하다.

이슬람은 중동의 아랍 여러 나라에서 신봉하는 종교로 알고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실은 아랍 국가 이외에도 이란, 아프리카 여러 나라,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 러시아 등에서도 중요한 종교, 심지어는 가장 큰 종교이다. 지금은 미국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흑인들) 사이에서 신봉자가 급증하고 있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이거나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곧 그렇게 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도 6·25 당시 유엔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했던 터키 군에 의해 전해졌고, 70년대 이후 중동과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지금은 3만 명 이상의 무슬림이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세계 이슬람 신도의 절반 이상이 중동 지역 동쪽에 퍼져있는 셈이다.

무함마드(Muammad)는 기원후 570년 아라비아 메카에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도 그가 6살 때 죽어, 고아가 된 그를 친할아버지 압둘 무딸립이 데려다 키웠는데, 할아버지마저 3년 후에 죽고 결국 큰아버지 아부 딸립의 집에서 컸다. 무함마드는 꾸레이쉬(Qurayish) 족(族)에 속했다.

유대인의 경전(그리스도교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아들이 없어 사라가 자기의 이집트인 하녀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보내 아들을 낳게 하였는데, 그 아이가 이스마엘이었다. 나중 사라 자신이 이삭을 낳게 되자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하갈을 집에서 쫓아내도록 강요했다. 이슬람 전승에 의하면,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지금의 메카 부근 사막지대의 계곡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이스마엘은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여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로부터 무함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쉬 족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소년들이 다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가난하게 살면서 상인들의 낙타를 몰아주거나 그들의 잡일을 거들었을 것이다. 좀 커서는 대상(隊商)들과 함께 예멘, 시리아, 팔레스타인 같은 곳을 다니며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종교의 사람들과 섞일 기회를 가졌다. 전설에 의하면 그가 큰아버지와 함께 시리아에 갔을 때 한 그리스도교 승려가 그를 보고 예언자가 될 상이라 했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25세 되었을 때 카디자(Khadijah)라고 하는 부자 과부에게서 일자리를 얻어 일하다가 15살 연상인 이 과부와 결혼하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사회에 살았지만 이 여인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이 여인 이외에 다른 부인을 두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아들 둘 딸 넷이 있었으나, 아들 둘은 어려서 죽고, 딸들은 결혼할 정도로 자랐지만 셋은 자식들이 없이 죽고 나머지 딸 파티마(Fatima)와 그 남편 알리 사이에서 하산과 후세인이라는 두 외손자를 얻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무함마드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종교 문제에 더욱 몰두하며 명상과 기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여러 해 동안 한 번에 며칠씩 메카 북쪽에 있는 히라 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며 보냈다. 610년 그가 40세 되던 해 라마단 달 어느 밤 동굴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읽으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계시한 것을!”하는 소리였다. 무함마드가 “저는 읽지를 못합니다”고 거절했는데도, ‘읽으라’ 혹은 ‘외치라’는 이 명령의 소리는 세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동굴 밖으로 나왔는데, 같은 목소리로 “그대는 알라의 사자(使者)로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극적인 종교체험은 『꾸란』 96장에 ‘권능과 영광의 밤’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나중 천사 가브리엘로 알려졌지만, 이 음성은 그 후 무함마드가 죽기 전까지 22년간 계속 들려왔다.

이슬람교의 성전인 꾸란.

무함마드는 자기의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겁에 질린 채 반신반의하면서 부인에게 자기의 체험을 이야기했다. 부인은, “즐거워하소서. 사랑하는 남편이여, 기뻐하소서. 그대는 이 백성을 위한 예언자가 될 것이옵니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의 부인이 첫 개종자가 된 셈이다. 둘이서 히브리 성경과 복음서에도 조예가 깊은 부인의 사촌을 찾아 가니 그도 무함마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틀림없이 이는 예언의 시작으로 위대한 법이 모세에게 이르렀던 것과 같이 그대에게도 이르리라”고 했다.

무함마드는 자기가 받은 계시가 신에게서 온 것임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만 그의 기별을 전하다가 나중에는 길거리나 신전 뜰에 나가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받은 계시에 따라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 심판이 임박하다는 것, 평등 박애 등 윤리적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 등을 가르치고, 우상숭배나 영아살해를 금하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웃음거리로 여기고 조롱할 뿐이었었는데, 그 후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조롱이 적개심으로 바뀌고, 적개심이 박해로 변했다.

특히 그가 가르치는 유일신 신앙과 윤리적 삶은 메카의 기득권층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한 가르침이었다. 620년 그의 부인이 죽고, 특히 무함마드의 종교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를 보살펴주던 그의 큰아버지마저 죽어 아무도 보호해줄 이 없는 상태에서 박해가 더욱 심해지자 무함마드는 할 수 없이 다른 도시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메카로부터 북쪽으로 약 400킬로 떨어진 야트립이라는 도시에서 부족들 간의 분쟁이 있었는데, 여섯 명의 대표자가 무함마드를 찾아와 상담을 구했다. 그들은 그의 정의감과 정직성을 좋게 여기고 돌아갔다. 다음 해에는 열두 명의 대표자 그를 찾아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그 도시로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 열두 명 대표자 중 열 명이 유대인이었는데, 이들 중에는 무함마드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초청을 받아들이고, 드디어 622년 9월 24일 그리로 피신을 했다.

그 때 이후 이 도시를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 메디나(Medina)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피신’ 혹은 ‘도망’을 아랍어로 ‘히즈라’(hijra)라 하는데, 나중 무함마드가 죽은 후 이렇게 피신한 서력 622년을 이슬람 역사의 원년(元年)으로 삼고 라틴어로 표기하여 A.H.(Anno Hegirae) 1년으로 하였다. A.D. 622는 A.H. 1이 되는 셈이다. (참고: 지금 서양에서는 A.D.(Anno Domini, ‘주님의 해로’라는 것이 그리스도교 중심의 연대 계산법이라 하여 더 이상 쓰지 않고, 그 대신CE(Common Era, 공력, 公曆)라 쓰고 있다. 서력 기원전은 BCE(Before CE)라 한다.)

메디나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기도하는 집’ 모스크를 짓고, 매주 금요일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개인적으로는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제도를 수립했다. 금요일을 정한 것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주일인 일요일처럼 특별히 거룩하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모두 함께 모여 기도하기에 편리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기도할 때 예루살렘을 향해 하다가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메카를 향해 기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슬람 전통에서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와 함께 여전히 3대 성지로 꼽힐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무함마드는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자기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 공동체나 대상(隊商)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이런 군사적인 성공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고, 자기의 종교적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메카에서 메디아로 이주한지 10년 되는 630년 메카를 점령하고, 드디어 아라비아 전역에 걸쳐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실질적 지도자가 되었다.

메카를 점령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카바(Ka’ba)라고 하는 성전을 찾는 일이었다. 경건한 자세로 성전을 일곱 바퀴 돌고 ‘흑석’(黑石) 앞에서 기도한 다음, 성전에 있던 일체의 우상들과 벽에 붙어 있던 아브라함이나 천사들의 그림들을 철거했다. 그 다음 하갈과 이스마엘이 마셨다고 전해 내려오는 잠잠(Zamzam) 우물로 가서 그 우물을 성별했다. 마지막으로 메카의 경계를 정하는 경계비들을 세우고 그 경계 안에서는 모든 무슬림들이 마음 놓고 순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든 아랍인들이 이전까지는 혈연에 따른 공동체에 충성하였지만, 이제부터 믿음의 공동체인 ‘움마’(umma)에 충성을 하라고 촉구했다. 4개월의 유예기간을 주고 이 움마에 충성하기를 거절하면 공격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이른바 ‘책의 백성들’이기에 특별 세금만 내면 그들의 신앙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은 이슬람을 두고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는 중세 시대 서양의 십자군이 지어낸 말로, 이슬람 자체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유대인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들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적 이유로 박해하는 일이 없었다.

메카를 점령하고 2년이 지난 632년(A.H. 10), 무함마드는 쇠약해진 몸을 가지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메카를 향해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은혜의 산’에 모인 10만 여명의 순례자들을 향해 무슬림의 결속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명심하도록 하오. 그대들은 알지니, 무슬림 개개인은 다른 무슬림의 형제이며, 따라서 모든 무슬림들은 형제지간이오!” 다시 메디나로 돌아와 3개월간 신열로 고생하다가 갑자기 죽었다. 632년 6월 8일. 62세의 나이였다.

구술만으로 詩처럼 아름다운 성전 ‘꾸란’ 남겨



식사를 대접받는 무함마드. 이슬람 그림에서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 꾸란 짓지 않고 하느님 예언 구술 했을 뿐 고백·기도·희사·단식·순례 다섯 의무 중시 지하드는 신 위한 노력…전쟁은 오해

사실 이슬람에 의하면 무함마드 자신의 가르침이란 없는 셈이다. 그는 하느님의 사자(使者)로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만을 전했을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사적으로 볼 때 그가 받았다는 계시도 사실 무함마드의 종교적 고뇌와 성숙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기에 계시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의 가르침의 대강을 더듬어보고, 또 그 계시 혹은 가르침에서 유래된 이슬람의 기본 신행 몇 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꾸란』이다. ‘읽다’ ‘읊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무함마드에게 온 하느님의 계시를 그대로 읽거나 읊은 것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꾸란』은 비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가 외운 것을 기록자가 받아서 적고 나중에 편집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던 문맹이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시적으로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말을 읊었다고 하는 사실 자체가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 것도 『꾸란』 구절이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꾸란』은 11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을 제외하고 제2장부터 제114장까지 긴 것에서 짧은 것 순으로 배열되었다. 제2장이 286절이고 제3장이 200절, 마지막 제114장은 6절에 불과하다. 전체 길이는 그리스도교 신약성서의 약 5분의 4정도가 된다. 무함마드가 외우는 것을 일단 ‘전문 기억사들’이 기억하도록 하고,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이미 종려 잎이나 돌 같은 곳에 기록하여 놓았다. 그가 죽고 제2 지도자가 나와서 이렇게 기록된 것을 한 데 모으고, 제3대 지도자가 이를 최종적으로 확인해서 지금껏 그대로 내려오고 있다.

무함마드가 죽고 20년 후의 일이다. 『꾸란』은 하느님의 직접적인 계시라 믿기 때문에 이것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세계 어느 다른 경전보다 크다. 또 그런 이유로 아랍어 이외의 다른 말로 번역해서도 안 된다. 다른 말로 나온 것은 모두 번역이 아니라 ‘해석’이다.

이슬람교도들은 『꾸란』안에 이 마지막 시대 사람들에게 필요한 하느님의 교훈이 다 들어가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는 1) 하느님과 그의 통치에 관한 신학적 가르침과 2) 성지순례나 단식 등에 관한 의식(儀式)적인 지시와 3) 결혼, 간통, 살인 등과 같은 민사적·형사적 문제 해결에 관한 치침과 4) 기타 예의나 윤리적인 교훈이 들어가 있다.

그 중에서 신학적인 것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 분 하느님: 무함마드 이전 아라비아는 잡신들을 섬기는 곳이었다. 『꾸란』은 하느님이 한 분 뿐이라는 유일신 사상을 철저하게 강조했다. ‘알라’라는 말은 아랍어로 ‘하느님’(the God)이라는 뜻이다. 이 한 분 하느님 이외의 것을 하느님이라고 여기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shirk)로서 이슬람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죄이다. 하느님은 창조주요 역사를 다스리시는 분이요 말세에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자이시다. 하느님은 ‘99가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꾸란』 각 장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하는 말로 시작된다.

2) 예언자들: 하느님은 역사를 통해 그 때 그 때마다 필요한 예언자를 보내셨는데, 지금까지 12만 4천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름을 거명한 것은 무함마드를 포함하여 28명이다. 아담으로 시작해서 노아,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모세, 다윗, 솔로몬, 엘리야, 요나, 사가랴, 침례 요한, 예수 등 히브리 성서에 나오는 낯익은 이름들이 18명, 그리스도인들이 3명, 아랍인들이 4명, 알렉산더 대왕 등 기타가 2명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명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무함마드이다. 물론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명은 무함마드. 그는 ‘말세를 위한 예언자’ 혹은 ‘예언자들의 인’(印)으로서 그 이후에는 다른 예언자도 다른 계시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3) 최후의 심판: 세상 끝 날에 하느님이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공과에 따라 심판하신다고 한다. 『꾸란』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부활의 날까지 일단 잠자는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부활의 날이 되어 하느님의 천사가 나팔을 불면,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상태에서 깨어난다. 부활하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 나가 자기들의 행위를 기록한 책에 따라 상벌을 받는다. 이런 종말관은 조로아스터교나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비슷하지만, 그들이 받는 상이 조금 다르다. 천국은 정금으로 된 거리 같은 것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과 취정이나 숙취가 따르지 않는 술을 즐기고 시종을 거느리며 사는 동산,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그늘진 정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열사를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모든 이슬람교도들은 의무적으로 ‘다섯 기둥’을 준수하여야 한다. 어느 면에서 이슬람은 이 다섯 기둥 위에 세워진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은 교리중심의 종교(orthodoxy)라기 보다는 실천중심의 종교(orthopraxy)라 할 수 있다. ‘다섯 기둥’은 다음과 같다.

1) 고백(): “하느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자라”하는 것을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이다. 아랍어로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드 라술루라’(la ilaha illa’llah muhammad rasulu’llah)하는 것을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다. 이슬람교도가 된다고 하는 것은 이 고백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2) 기도(): 하루에 새벽, 정오, 오후, 일몰, 밤--이렇게 다섯 번씩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기 전에는 반드시 세정(洗淨)이라는 정결례를 치루고, 신발을 벗고 기도 깔개를 펴고 메카를 향해 한국에서 큰절할 때와 비슷한 모양으로 엎드려 기도한다. 금요일 정오에는 모스크 모여 함께 기도한다. 모스크를 한국 이슬람에서는 ‘성원’이라 부른다.

3) 희사(): 모든 성인은 자기의 재산의 2.5 퍼센트를 구제금으로 바친다.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십일조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십일조는 자기 수입의 10 퍼센트이지만 이슬람 헌금은 자기 재산의 2.5 퍼센트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십일조보다 더 클 수 있다.

4) 단식(sawm): ‘라마단’이라는 달 한 달 동안 낮 시간에 한해 먹는 것, 마시는 것, 담배 피우는 것, 성행위 하는 것 등을 완전히 금한다. 손에 검은 실과 흰 실을 들고 둘을 분간할 수 있으면 낮 시간이고 분간할 수 없으면 밤 시간이다. 밤이 되면 단식에서 풀려난다. 병자들이나 여행자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어린 아이들은 이 단식에서 제외된다.

5) 순례(): 모든 이슬람교인들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 메카로 순례를 하고 와야 한다. 전통에 의하면 메카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자리 잡아 살던 곳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한 분 하느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예배하던 곳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은 순례를 위한 특별한 달에 메카로 향한다. 순례 중에는 성행위를 하거나 머리나 손톱을 깎아도 안 된다. 메카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교통수단을 놓아두고, 수의(壽衣)를 상징하여 꿰매지 않은 두 쪽 천의 간소한 베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맨발로 걸어서 들어간다. 메카에 가면 카바 성전에 있는 ‘검은 돌(黑石)’을 중심으로 시계방향 반대로 일곱 번을 도는데 세 번은 천천히, 네 번은 빠르게 돈다.

이런 성전 돌이를 끝내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젬젬이라는 우물로 간다. 옛날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갈이 목말라하는 아들을 위해 두 언덕을 일곱 번 오가면서 물을 찾고 있었는데, 목이 말라 발버둥치던 이스마엘의 발아래에서 물이 솟아나 우물이 되었다는 그 곳으로 가 약 500미터 정도 되는 두 언덕 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일곱 번 오가며 그 때의 고생을 재현하고, 치료에 영험이 있다는 그 우물물을 받아 온다.

본격적인 순례는 메카에서 동쪽으로 약 20 km 떨어진 아라팟()평원을 찾아 그 곳에 있는 ‘자비의 산’에 올라 ‘하느님 앞에 섬’이다. 정오가 되면 최후의 심판 때 하느님 앞에 서는 마음으로 서서 해가 질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쫓겨나서 서 있던 곳이고,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함께 서 있던 곳이며, 무함마드가 마지막으로 연설하며 서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 밤을 한데서 보낸 후 ‘미나’라는 곳으로 가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죽이는 대신 양을 잡아 제사한 것을 기념하여 동물을 잡아 제사를 지낸다. 이슬람에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산제사로 바치라고 한 아들이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 믿는다.) 여기서 사흘 동안 축제로 보내고, 다시 카바 성전의 흑석을 돌고 들어오면서 입었던 옷을 벗는 것으로 순례는 끝난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메디나로 가 무함마드의 무덤에 참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예루살렘까지 가기도 한다.

순례는 마친 사람은 새로 난 아기처럼 죄가 없어진 상태라고 보고, 그 이름 앞에 ‘순례자’라는 표시를 한다. 이런 의식을 통해 전 세계 무슬림들이 하느님 앞에는 하나요 동등하다는 공동체 의식과 유대를 강화하게 된다.

지하드: 이슬람교 교파에 따라서는 지하드()를 여섯 째 기둥이라 여기기도 한다. 지하드는 ‘성전’(聖戰)을 의미지만 ‘성전’이 꼭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 ‘하느님의 길에서 힘씀’이라는 뜻으로, 무엇이나 하느님의 일을 위하는 것이면 지하드가 된다. 최근에 와서 이슬람 국가나 종교가 위협을 받을 때 이를 방어하는 일 등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쓰는 것이 지하드의 주된 일처럼 된 것이 사실이지만, 자기가 사는 곳에 모스크를 짓는 일, 멀리 떠나서 전도하는 일 등 광범위한 종교 활동도 지하드이고, 무엇보다도 큰 지하드는 자신의 이기적인 정욕과 본능을 물리치려고 힘쓰는 것이다. 지금 많은 이슬람교도들은 자유주의나 서양화에 저항하는 것이 지하드라고 보기도 한다.

이상이 무함마드가 받은 계시와 거기에서 유래된 이슬람의 기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을 무조건 전투적이고 호전적 종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