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옵스큐라는 현대 카메라의 효시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바늘 구멍을 통해 들어온 광선이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10세기에 아라비아의 학자 알하젠(Alhazen)이 그 효과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했고, 바늘구멍을 밖으로 뜷은 암실인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이란 뜻))속에서 일식을 보는 방법(그림1)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미지 개선을 위해 렌즈를 끼워 넣었고, 옵스큐라의 크기도 점차 축소되었다. 16세기에 델라 델라포르타(G.B.della porta)가 그의 책 <자연의 마술>에서 예술가들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 서구사회의 예술가들에게 있어 중요한 목표는 대상의 사실적 묘사와, 환상의 깊이를 창출해 내는 대상의 정확한 배치였기 때문에 위의 제안은 매우 열띤 반응을 일으키며 채택되었다. | |
[그림1] 일식(日飾), 최초로 간행된 카메라 옵스큐라의 도해, 1544년. | |
2. 이미지의 고정 그러나 그 당시에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이미지를 고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일정한 은화합물을 빛에 노출시킴으로써 짙은 색을 띠게 된다는 것이 17세기에 관찰되었으나, 이미지가 모두 까맣게 되기 전에 이 작용을 어떻게 멈추는가가 문제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도공의 아들이었던 웨지우드(T.Wedgwood)가 최초로 이미지를 기록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카메라 이미지로는 실패했으나 질산은으로 감광된 흰 가죽이나 종이위에 곤충의 날개와 잎사귀를 놓아, 햇빛에 노출시킴으로써 네가티브의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가 연구해 낸 은화합물을 이용해서 이러한 실루엣을 영원히 정착시키는 것은 실패했다. 진정한 의미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것은 프랑스 중부지방에 살았던 발명가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에 의해 1826년에 비로소 만들어졌다. | |
[그림2] Niepce, 그의 집 창문에서 본 경치, 1826년경. | |
3. 헬리오그라프 석판인쇄술의 새로운 공정에 관심을 갖고 있던 니엡스는 이를 이용해 카메라 옵스큐라로부터 자연의 모습을 복사하려고 여러번 시도한 끝에 1820년 초에 빛을 쐬면 굳어지는 일종의 아스팔트인 주데아 비투멘을 이용하여 그 혼합물로 감광지를 만들었다. 그것을 옵스큐라 속에 넣고 창가로 가서 그의 안뜰을 향해 8시간동안 노출하여 최초의 사진이 만들어진다. 그는 아직 빛에 노출되지 않은 그러나 빛에 민감한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이미지를 영원히 고정시키는데 성공한다. 이것을 헬리오그라프(heliopraph, 그리스어로 헬리오는 '태양'을, 그라포스는 '그림그리기'라는 뜻을 나타낸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지의 질은 만족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니엡스의 작업은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에게 전해지고 당시 디오라마(diorama : 특수조명과 대형의 투명그림을 이용해 환상적인 효과로 경치를 재현함)로 장관을 묘사하는데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고 있던 그는 이미지 보존을 위한 니엡스의 시도에 흥미를 가지고 1829년부터 니엡스와 공동연구를 시작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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