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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의 아이를 낳은 징기스칸의 아내

妙有 李應鎬 2011. 7. 29. 19:54

적장의 아이를 낳은 징기스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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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의 아이를 낳은 징기스칸의 아내


기스칸은 아홉 살 때 옹기라트 부족장의 집에서

데릴사위로 산다.

옹기라트 부족장인 데이 세첸의 딸 버르테와 결혼을 했고,

당시 풍습에 따라 처가 살이를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타타르 부족이 독을 탄 술을 마시고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집으로 달려 온다.



버르테를 데리고 온 칭기스칸이 가족들과 함께

케룰렌강 상류 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희뿌연 안개가 피어오르는 고요한 새벽에

3백 명의 메르키트 부족 전사들이 그곳을 습격했다.

그들은 테무진의 아내 버르테를 납치해 갔다.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테무진은 너무나 슬펐다.

그러나 자신 앞에 밀어닥친 엄청난

비극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피납 사건을 기상천외한

반전의 기회로 삼는다.

 

당시 몽골 최고의 실력자는

케레이트 부족의 옹칸이 었다.

옹칸을 설득하고, 자신의 의형제였던

자모카의 군대까지 끌어 들여 메르키트 공략에 나섰다.

징기스칸의 ‘아내 구하기 전쟁’인 것이다

 

2년 만에 아내를 구출한 칭기스칸,

그러나 아내 버르테의 뱃속에는

적장 칠게르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버르테는 남편과 재회한 후 곧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주저하지 않고

이 아이를 아들로 받아 들였다.

그는 아이에게 “우리 몽골인에게

나그네처럼 다가온 아이”라 하여

‘조치’(나그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훗날 징기스칸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됐을 때,

아버지가 다른 형제인 장남 조치와

차남 차가다이가 싸움을 벌였다.

 

그때 몽골의 샤먼이자 가족의

보호자 격인 쿠쿠추가 나서

두 사람의 어머니인 버르테를 변호했다.


고통과 희생의 나날을 보낸 어머니의 삶을

듣고서 두 아들은 싸움을 멈췄다.

 

이 싸움을 목격한 칭기스칸은 조치에게

새로운 땅을 개척할 것을 명한다.

기회를 얻은 조치는 러시아와

헝가리 초원을 향해 길을 떠났다.

 

조치와 그의 아들 바투칸이 건설한 새로운 제국이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킵차크칸국이었다.   

 

유럽을 정벌하던 조치가 사망했다는 전갈이 온 날,

징기스칸은 하루 종일

겔 안에 틀어박혀 슬피 울었다고 한다.

상처속에서 자라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연민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착민 중에서 강간 당한 아내가 낳은 자식을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