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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문화

妙有 李應鎬 2011. 3. 18. 10:52

매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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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문화 ♧

    매화가 피기 시작하였다 한자문화권에서 격조 높은 꽃으로 존중받았던 꽃이 매화이다 다른 모든 꽃들은 날씨가 따듯해져야 꽃을 피우지만 매화는 추운 날씨에서도 꽃을 피우고 암향(暗香)을 풍기기 때문이다 매화는 선비 중에서도 한사(寒士)에 비유되곤 하였다 정치적인 좌절 또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하여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견디어야 했던 선비들에게 매화는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대변해 주는 꽃이었다 불행을 견디게 해주는 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졌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세한(歲寒)’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매화를 유독 사랑했던 인물을 꼽는다면 송나라의 임포(林逋)와 조선의 퇴계(退溪)이다 임포는 세상에 나가지 않고 오직 매화와 학을 기르면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 길렀다 매처학자(梅妻鶴子)가 그것이다 나는 항저우에 갈 때마다 반드시 배를 타고 들어가 서호(西湖) 가운데에 있는 섬인 고산(孤山)에 들르곤 하였다 여기에서 임포가 은둔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관광객들로 인하여 격조를 잃었지만 고산은 중국의 역대 문사들이 매림귀학(梅林歸鶴)의 명소로 찬탄하던 곳이다 조선에는 퇴계가 있었다 퇴계는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에 죽었다 그는 임종하던 날 아침에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말을 남겼다 이승을 마감하는 마지막 시점에 남긴 멘트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였으니 그의 매화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는 매화를 아주 좋아해서 매화에 대한 시 90여 수를 지었고 생전에 이를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을 편집해 두었다 그는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으로 부르면서 매화를 인격체로 대접할 정도였다 조선 선비들은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벽에 붙여 놓고 봄을 기다렸다 동지로부터 날짜를 세기 시작하여 81일간이 구구(九九)에 해당한다 흰 매화꽃 봉오리를 81개 그려놓고 매일 한 봉오리씩 붉은색을 칠해서 81일째가 되면 백매가 홍매로 변하는 그림이다 이때가 3월 12~15일 무렵이 된다. 지금 드디어 그때가 왔다 ~ 옮긴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