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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女子네 집

妙有 李應鎬 2010. 12. 6. 18:43

그女子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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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깜빡깜빡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잇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 하며 
    

     

     
      눈이 가득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 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 이계진